☕ 라라's Comment 안녕하세요. 라라다방의 라라입니다. 한 주 건강하게 보내셨나요? 새롭게 구독 신청해주신 독자님에게도 감사합니다.😊 매주 월요일, 5분~10분 티타임 동안 천천히 정독할 만한 해외 콘텐츠를 우리말로 옮겨 전해드릴게요. 오늘 두 번째 뉴스레터에는 하퍼스 바자 US의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공격의 해법>을 가져왔어요. 이 글에선 '보이지 않음(invisibility)'이란 단어가 여러 번 쓰였어요. 해리포터가 입는 투명 망토(invisibility cloak)에도 ‘invisibility’가
들어가는데요. 그동안 미국 내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인종처럼 다뤄졌던 아시아계 미국인 문제를 언급할 때 자주 쓰여요.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 신화'라는 단어도 눈에 띄어요. 이건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고정관념을 뜻하는 말이에요. 아시아인은 미국에서 '모범적인 소수민족 신화'의 주인공으로 여겨져요. 열심히 일하고, 수학 문제 잘 풀고, 예의 바르며, 교육과 경제 수준도 높다는 얘긴데요. 언뜻 "좋은 것 아니야?" 싶겠지만, 이 고정관념 때문에 아시아계 미국인은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과 폭력을 겪고 있어요. 사실, 저는 화합이나 연대처럼 '옳은 말'로 마무리하는 글을 선호하진 않아요. 그러나 지금 당장은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소리높여 말하고 또 말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글을 가져왔답니다. ☕ 오늘의 단어 🍰 multiracial :
다민족의
Many communities are becoming increasingly multi-ethnic and multiracial. 🍰 autoworker : 자동차 제조(공장) 노동자 Elon Musk might be hosting SNL, but Tesla autoworkers aren’t laughing. 🍰 outrage : 분노, 잔학 행위 It's an outrage that so much public money have been wasted in this way. 🍰 xenophobia : 이방인을 향한 혐오와 두려움 The attacks have been described by police as xenophobia. 🍰 a community fridge : 미국 내 지역 사회에서 음식을 공유하는 상호 원조 프로젝트. 누구든 음식을 넣고 꺼낼 수 있다. '친절한 냉장고'(friendly fridges) 로도 불린다. She hands out free food from a community fridge. ☕ 5분 동안 1편 읽기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공격의 해법 지난해 미국 내 16개 주요 도시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혐오 범죄가 149% 늘어났어요 (이미지 출처: 하퍼스 바자 US) 지난 봄 뉴욕의 내 작은 스튜디오에서 봉쇄돼 있었다. 불길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이렌 소리를 들었고, 얇은 커튼 사이로 빨간 불빛이 깜빡였다. 코인 빨래방은 문을 닫아서 방엔 지저분한 옷들이 쌓여갔다. 지난해 4월에는 브루클린에서 쓰레기를 버리다가 염산 테러(an acid attack)를 당한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뒤이어 6월엔 89살 된 아시아 여성에게 누군가가 불을 붙였지만, 그 여성은 가족이 걱정할 까봐 곧바로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한 소식을 듣진 못했다. 지난 9월부터 몇 주 전까지 성적으로 모욕당하고 결국은 살해당한 36살 의 리(Ee Lee)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이 사건들을 들었을 때 두렵고 슬펐다. 무엇보다도 내가 보이지 않는(invisible)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런 사건들은 무차별적으로 일어나고, 거의 모든 주류 언론들은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분노(폭력, 학살)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비가시성(invisibility)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은 있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직면하는 문제와 나를 향한 말, 이를테면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잘 하고 있어. 이들은 명예 백인이지, 유색 인종은 아니야.”라는 말에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아마도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맞닥뜨리는 인종차별에 또다시 기름을 붓지 않으려고 조용히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아시아계 미국인에겐 인종차별 트라우마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당장 강제추방 위기에 처한 동남아시아 사람이 1만 5,000명이며, 뉴욕시의 빈곤층 가운데 아시아계 미국인이 가장 높다는 사실, 그리고 이슬람 공포증 때문에 남아시아인과 이슬람교도들의 폭력 사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 또한 중국인 배척법(the Chinese Exclusion Act)의 역사, 일본인 수용 문제, 아시아 국가들에서 벌어진 전쟁,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킨 아시아 국가들의 전쟁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5월, 흑인 페미니스트 연합인 ‘블랙 우먼 래디컬(Black Women Radicals)’의 제이미 스위프트가 아시아계 미국인 페미니스트 연합(내가 공동으로 만든 곳)에 인스타그램 DM을 보냈다. 그녀는 흑인과 아시아인 공동체가 코로나19로 인해 경험한 인종차별을 연대해 연결시켰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아시아인을 팬데믹의 희생양으로 삼고, ‘쿵 플루’나 ‘중국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쓰면서 인종차별과 제노포비아를 강화할 때, 아시아계 미국인은 괴롭힘과 폭력의 타깃이 됐다. 동시에 우린 흑인과 라틴계가 겪는 구조적인 건강 불평등의 파괴를 생생히 봤다.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나눈 우리의 대화는 2년 프로젝트의 시작이 됐으며, 흑인과 아시아 페미니스트의 연대로 바뀌었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서로의 노력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연대의 정치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음(invisibility)’과 인종차별(racism)을 지금까지 내면화했기 때문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는 우리 공동체를 취약하게 한다. 이 ‘보이지 않음’은 미디어와 국가(the state)가 우리(아시아계 미국인)의 서사를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 같은 스테레오타입으로 재단하도록 허용하며, 희생양이 필요해질 때까지 우리를 편하게 살도록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자신을 드러내고 신뢰를 쌓으면, 지금껏 미디어와 국가가 해온 패턴을 방해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이야말로 편견과 폭력을 향해 투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동맹하는 것이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에 침묵하는 것이 아님을 배웠다. 그것은 우리의 해방이 함께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완전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만 하고, 고통을 소리 높여 말해야 한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흑인에 대한 보상과 이민자 구치소의 종료를 지지하는 일본 국제 사회의 생존자들과 연대하는 것을 보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연대의 중요성을 알려줬고, 연대를 통해 어떻게 백인우월주의가 위협받았는지를 가르쳤다. 백인우월주의는 흑인과 아시아인의 갈등을 부각하며 분노를 일으키는 이야기, 그러나 한 번도 존재하거나 번영한 적 없던 연대의 역사가 담긴 이야기를 제기함으로써, ‘다른 존재(흑인과 아시아인)’를 향한 공포를 이용한다.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인 그레이스 리 보그스 같은 사람들은 1960년대 디트로이트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페미니스트로서 다민족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의 연합을 조직했다. 보그스는 “서로 돌보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강력히 말했다. 1980년대 흑인과 유색인종 페미니스트들은 모여 ‘키친 테이블 프레스’를 설립했고, 억압의 교차성을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나의 등으로 불리는 다리(This Bridge Called My Back)』처럼 그들 사이 억압의 교차성을 해방 운동의 길로 부각하는 문집을 출판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정치 실천과 진실성을 사랑이라고 믿는다. 아마 우리 중 누군가는 반아시아인 폭력 문제에 관해 얘기하기가 불편할 것이다. 왜냐하면 더 많은 치안 활동과 반흑인 인종차별, 레토릭(rhetoric)을 향한 요구에 너무 자주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더 강력한 치안은 해답이 될 수 없었다. 또한 우린 토미 리, 크리스티안 홀, 안젤로 퀸토처럼 경찰 폭력으로 사망한 아시아계 미국 여성을 잊을 수도 없다. 나는 우리가 조직 위원들의 선례를 따르기를 촉구한다. 이 조직 위원들은 우리 공동체를 바로잡는 작업을 해왔다. 반-아시아 폭력을 향한 해결책으로 다른 유색 인종을 범죄화하지 않기, 인종으로 분류하지 않기, 감옥에 가두지 않기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잠재운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는 우리 삶을 인간답게 만들고 향상시키는 상호 신뢰를 위한 진실되고도 어려운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돌봄(보살핌, 보호)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The only way we will get through this is to cultivate care.) 이는 상호 원조(mutual aid)나 지역 사회 냉장고(community fridges) 등을 뜻한다.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에 정신 건강, 폭력, 해악에 대한 지역 사회 기반의 해결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웃과 의지할 사람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우리를 지지하기 위해 아시아 음식점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음식만 먹을 게 아니라 그들의 직장인, 가족, 그들의 삶을 깨닫는 것이다. 이 슬픔의 시간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연대를 보여주듯이, 그렇게 하라. 왜냐하면 당신은 우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스팸함에서 살아남기! hello@stibee.com을 주소록에 추가해주세요. 주소 전화번호 수신거부 Unsubscribe |
에디터가 번역한 해외 기사와 수다